동전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옆면을 만져보면 어떤 것은 매끈하고
어떤 것은 작은 홈이 촘촘하게 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홈은 단순한 장식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금화와 은화의 가장자리를 아주 조금씩 깎아내 귀금속을 훔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깎은 동전은 다시 정상적인 돈처럼 사용하고,
모은 금과 은 조각은 따로 팔았습니다. 동전 가장자리의 홈은 이런 일을 한눈에
알아채기 위한 일종의 400년 전 보안장치였습니다.
옛날 동전은 금액만큼 금과 은이 들어 있었다
지금 사용하는 동전은 적혀 있는 액면가와 동전 속 금속의 가격이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 금화와 은화는 달랐습니다. 동전 자체에 들어 있는
금과 은의 양이 돈의 가치와 직접 연결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동전을 손으로 찍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달랐고 가장자리도
지금처럼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가장자리에서 금이나 은을 조금 잘라내더라도 처음부터 울퉁불퉁한 동전인지,
누군가 손을 댄 것인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동전을 조금씩 깎아 돈을 벌었다
이 범죄를 영어로 coin clipping이라고 합니다.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은화 하나에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가장자리를 조금 깎습니다.
이런 동전을 수십 개, 수백 개 모아 같은 일을 반복하면 상당한 양의 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깎인 동전도 시장에서는 원래 액면가로 다시 사용됐습니다.
범인은 귀금속을 챙기고, 가치가 줄어든 동전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구조였습니다.
Royal Mint 자료에 따르면 이런 방식의 동전 훼손은 한때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동전마다 무게가 달라지면서 상인들은 돈을 받을 때 저울로 무게를 확인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동전 가장자리에 표시를 해두면 어떨까?
해결책은 생각보다 기발했습니다.
동전 가장자리를 처음부터 일정하게 만들고 촘촘한 세로 홈이나 글씨를 새겨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가장자리를 조금이라도 깎는 순간 무늬가 사라집니다.
동전의 무게를 일일이 재보지 않아도 옆면만 보면 손을 댔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국 Royal Mint에 따르면 이런 기계식 가장자리, 이른바 milled edge는 1660년대
영국 주화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British Museum이 소장한 1663년 은화에도 가장자리에 표시가 있으며, 박물관은 당시 이런 표시가 동전 깎기를 막기 위한 장치로 영국에 도입되던 시기였다고 설명합니다.
홈 대신 문장을 새긴 동전도 있었다
꼭 세로 홈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일부 금화와 은화 가장자리에는 라틴어로 “DECUS ET TUTAMEN”이라는
문장이새겨졌습니다.
뜻은 대략 “장식이자 보호장치”입니다.
말 그대로 예쁘게 보이면서도 동전 가장자리를 잘라내면 글자가 사라지기 때문에 위조와
훼손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돈의 옆면에 보안문구를 새긴 셈입니다.
아이작 뉴턴도 동전 도둑을 잡았다
여기에는 의외의 인물도 등장합니다.
중력과 만유인력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입니다.
뉴턴은 1696년 영국 Royal Mint의 Warden으로 임명됐고 1699년에는
Master of the Mint가 됐습니다.
당시 영국은 낡고 깎인 은화와 위조화폐 때문에 큰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뉴턴은 1696~1698년의 대규모 화폐 교체 작업에 참여했고, 이후 직접 정보원과
범죄자들을 조사하며 동전을 깎거나 위조한 사람들을 추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오해는 구분해야 합니다.
뉴턴이 동전 가장자리의 홈을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기계식 주화와 가장자리 표시는 그가 조폐국에 들어오기 전인 1660년대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뉴턴은 이 보안 기술이 자리 잡던 시기에 기존의 불량·훼손 동전을 새 동전으로
교체하고 위조범을 단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지금 동전은 금도 은도 아닌데 왜 홈이 남아 있을까?
여기서 새로운 궁금증이 생깁니다.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동전에는 예전처럼 동전 가격만큼
금이나 은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전 가장자리를 조금 깎아 금속을 모은다고 해서 17세기처럼 큰 이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화폐 디자인의 전통이 됐고, 서로 비슷한 크기의 동전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졌을 때
구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동전 가장자리는 종류에 따라 매끈한 형태, 홈이 있는 형태, 글자가 적힌 형태,
장식이 있는 형태 등 다양합니다.
미국 동전의 홈 개수는 모두 같을까?
더 재미있는 것은 홈의 개수도 동전마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미국 조폐국의 2026년 공식 규격을 보면 10센트 동전에는 118개의 홈, 25센트 동전에는 119개,
50센트에는 150개의 홈이 있습니다.
반면 현재 미국 1달러 동전의 가장자리에는 촘촘한 홈 대신 글자가 들어갑니다.
즉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동전의 옆면도 사실은 화폐 디자인의 일부입니다.
동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앞뒤가 아니라 옆면일지도 모른다
동전의 앞면에는 인물이나 국가를 상징하는 그림이 있고 뒷면에는 숫자와 문양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앞뒤만 봅니다.
하지만 역사만 놓고 보면 오히려 몇 밀리미터에 불과한 옆면에 오래된 범죄와 보안기술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전에서 금과 은을 조금씩 훔치기 시작했고, 이를 막기 위해 가장자리에 표시를 넣었습니다.
그 기술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나라의 동전에서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동전 하나가 생기면 앞면의 그림보다 먼저 옆면을 한번 만져보셔도 좋겠습니다.
평범한 작은 홈들이 사실은 17세기 돈 도둑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흔적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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