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심폐기|수술 중 심장과 폐를 대신한 기계

심장수술을 생각하면 한 가지 이상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심장을 수술하는 동안에도 심장은 계속 뛰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심장은 온몸으로 피를 보내는 펌프이고, 폐는 그 피에 산소를 공급합니다.

두 장기가 멈추면 몸 전체에 산소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의사는 어떻게 심장을 멈춘 상태에서 심장 안쪽을 수술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이 바로 심폐기입니다.

심폐기는 수술 중 잠시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해 피를 몸 밖으로 빼낸 뒤 산소를 공급하고 다시 몸으로 보내주는 기계입니다.

이 기계가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심장 내부 수술이 가능해졌습니다.

심장 안을 수술하기 어려웠던 이유

과거의 외과의사들에게 심장은 쉽게 손댈 수 없는 장기였습니다.

심장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내부에는 계속 피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심장을 열어 안쪽을 수술하려면 피의 흐름을 잠시 멈춰야 합니다.

하지만 피를 멈추면 뇌와 다른 장기에 산소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몇 분만 지나도 심각한 손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수술하는 동안만이라도 심장과 폐를 대신할 기계를 만들 수 없을까?"

이 아이디어가 훗날 심폐기로 이어집니다.

한 환자의 죽음에서 시작된 아이디어

심폐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미국 외과의사 존 헤이셤 기번 주니어(John H. Gibbon Jr.)입니다.

1931년 젊은 의사였던 기번은 폐동맥에 혈전이 막힌 한 환자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수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환자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기번은 이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몸에서 산소가 부족한 피를 빼내 기계에서 산소를 넣은 뒤 다시 동맥으로 보내면 수술하는 동안 환자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이 생각이 그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존 기번의 20년 연구

기번은 1930년대부터 심폐기를 만들기 위한 동물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내 메리 홉킨슨 기번(Mary Hopkinson Gibbon)도 오랫동안 연구에 함께했습니다.

초기의 장치는 지금의 의료기기와 비교하면 매우 복잡하고 거대했습니다.

피를 몸 밖으로 꺼내는 관이 필요했고, 혈액을 움직이는 펌프도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피에 산소를 공급할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1940년대에는 동물의 혈액순환을 일정 시간 기계로 유지할 수 있을 정도까지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아직 부족했습니다.

기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구를 잠시 멈췄지만 전쟁이 끝난 뒤 다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IBM의 기술도 심폐기 개발을 도왔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번의 연구에는 새로운 도움이 생겼습니다.

당시 IBM의 기술진이 심폐기 개발에 참여한 것입니다.

혈액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장치를 더욱 정밀하게 작동시키기 위한 기술이 추가됐습니다.

여러 해의 연구 끝에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심폐기가 완성되기 시작했습니다.

1953년 5월 6일, 세계 최초의 성공

그리고 1953년 5월 6일 역사적인 수술이 진행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토머스 제퍼슨 의과대학병원에서 존 기번은 18세 여성 환자의 심장수술을 시작했습니다.

환자에게는 심장의 좌우 심방 사이에 구멍이 있는 심방중격결손이 있었습니다.

수술이 시작되자 환자의 혈액은 심폐기로 보내졌습니다.

기계는 환자의 피에 산소를 공급하고 온몸으로 다시 보내면서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덕분에 기번은 심장 내부를 직접 보면서 결손 부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이 사건은 기계식 심폐기를 이용해 성공한 세계 최초의 개심술로 기록됐습니다.

심폐기는 어떻게 심장과 폐를 대신할까?

이름 그대로 심폐기는 두 가지 장기의 일을 대신합니다.

심장의 역할은 피를 보내는 것.

폐의 역할은 피에 산소를 넣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

심폐기는 이 두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수행합니다.

먼저 몸에서 산소가 부족한 혈액이 관을 통해 기계로 들어옵니다.

혈액은 저장 공간을 지나 산화기(oxygenator)로 이동합니다.

산화기는 폐처럼 혈액에 산소를 넣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합니다.

그 다음 펌프가 산소가 풍부해진 혈액을 다시 환자의 대동맥으로 보냅니다.

이렇게 혈액이 몸 밖의 기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몸으로 들어가는 것을 체외순환이라고 합니다.

아주 쉽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심폐기는 공사 중인 도로 옆에 만들어 놓은 임시 우회도로와 비슷합니다.

평소에는 피가 심장과 폐를 지나갑니다.

하지만 심장을 수술해야 할 때는 이 길을 잠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피가 심장과 폐를 통과하지 않고 심폐기라는 임시 길을 지나가도록 합니다.

수술이 끝나면 다시 원래 길로 혈액순환을 돌려놓습니다.

심폐기의 주요 역할

장치 역할 우리 몸에서 대신하는 기능
펌프 혈액을 몸으로 보냄 심장
산화기 산소 공급·이산화탄소 제거 폐
열교환기 혈액 온도 조절 체온 관리
튜브·저장조 혈액을 이동·저장 혈관 역할 보조

심장을 멈춰도 몸은 계속 살아 있다

심폐기가 작동하면 의료진은 필요한 경우 약물을 사용해 심장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습니다.

심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외과의사는 훨씬 정밀하게 심장 내부를 수술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심폐기가 몸 전체에 산소가 들어 있는 혈액을 계속 공급합니다.

수술이 끝나면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혈액순환을 서서히 원래 상태로 돌립니다.

현대 심장수술에서는 심폐기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체외순환사(perfusionist)가 수술팀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최초의 성공 이후에도 실패가 이어졌다

1953년 첫 수술이 성공했다고 해서 심폐기가 바로 완벽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번이 이후 심폐기를 사용해 시도한 환자들에게서는 좋지 않은 결과가 이어졌습니다.

초기 개심술은 사망 위험이 매우 높은 수술이었습니다.

결국 기번은 임상 수술에서 심폐기를 계속 사용하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연구팀이 심폐기를 더욱 안전하고 간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존 커클린, 월턴 릴리하이 등 여러 외과의사와 연구진이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심폐기를 이용한 심장수술이 점차 확산됐습니다.


심폐기와 인공심장은 무엇이 다를까?

심폐기와 인공심장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목적이 다릅니다.

구분 심폐기 완전 인공심장
주요 목적 수술 중 일시적으로 심장·폐 역할 대신 고장 난 심장의 펌프 역할을 대신
사용 위치 주로 몸 밖 주요 장치를 몸 안에 이식
사용 기간 주로 수술 시간 동안 장기간 사용할 수 있음
폐 기능 산소 공급까지 대신 주로 심장의 펌프 기능 대체

심폐기가 바꿔놓은 의료 현장


심폐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심장 안쪽에 있는 질환을 직접 고치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심폐기가 등장하면서 외과의사는 심장을 잠시 멈춘 상태에서 내부를 자세하게 보고 수술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결과 선천성 심장질환, 심장판막질환, 관상동맥질환 등 여러 질환의 수술이 발전했습니다.

심장이식과 일부 인공심장 수술에서도 심폐기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에는 심폐기를 사용하지 않고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시행하는 일부 수술도 있지만, 심폐우회술은 여전히 많은 심장수술에서 중요한 기술입니다.

내가 느낀 점

심폐기 이야기를 알아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존 기번이 한 번의 발명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931년 한 환자의 죽음을 본 뒤 시작한 아이디어가 실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까지 약 20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수많은 동물실험과 실패가 있었고 연구를 멈춰야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기술 덕분에 의사는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멈추고 그 안을 직접 수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심장수술 하나에도 누군가의 20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한눈에 정리

- 1931년: 존 기번이 심장과 폐를 대신할 기계를 구상

- 1930~1940년대: 동물실험을 통해 체외순환 장치 연구

- 1950년대: IBM 기술진과 함께 심폐기 개선

- 1953년 5월 6일: 심폐기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성공적인 개심술

- 환자: 심방중격결손이 있던 18세 여성

- 심폐기는 심장의 펌프 기능과 폐의 산소 공급 기능을 동시에 대신

- 이 성공은 현대 개심술 발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됨

FAQ

Q1. 세계 최초의 심폐기는 누가 만들었나요?

미국 외과의사 존 H. 기번 주니어가 오랜 연구 끝에 실용적인 심폐기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1953년 이 장비를 이용해 사람의 심장수술에 처음 성공했습니다.

Q2. 세계 최초로 심폐기를 이용한 수술은 언제 성공했나요?

1953년 5월 6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존 기번이 18세 여성의 심방중격결손을 수술하면서 세계 최초로 기계식 심폐기를 이용한 개심술에 성공했습니다.

Q3. 심폐기는 심장과 폐를 어떻게 대신하나요?

몸에서 나온 혈액을 기계로 보내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뒤 펌프를 이용해 다시 몸으로 보내 심장과 폐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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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참고

- PubMed - John H. Gibbon과 최초의 성공적인 심폐기
John H. Gibbon, Jr. Part I. The development of the first successful heart-lung machine

- American Heart Association - 심폐기 개발 역사
The chaotic beginnings of the tool that made heart surgery possible

- 미국 NIH NHLBI - 심장수술과 심폐기 작동 방식
Heart Surgery - What to Expect During Surg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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