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투석기|고장 난 신장을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하다


우리 몸에는 매일 쉬지 않고 피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장기가 있습니다.

바로 신장, 흔히 콩팥이라고 부르는 장기입니다.

신장은 몸속 노폐물과 필요 없는 수분을 걸러 소변으로 내보냅니다.

그런데 신장이 갑자기 일을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몸속에는 노폐물과 수분이 계속 쌓이고 결국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혈액투석이라는 치료가 있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신장이 멈춘 환자를 살릴 방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생각했습니다.

"몸 밖에서 피를 꺼내 깨끗하게 만든 뒤 다시 넣어줄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서 인공신장과 혈액투석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신장이 멈추면 몸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까?

신장은 단순히 소변만 만드는 장기가 아닙니다.

우리 몸에서 사용하고 남은 노폐물을 제거하고 수분과 전해질의 균형을 맞춰줍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몸속의 정수장과 비슷합니다.

정수장이 멈추면 더러운 물이 계속 쌓이는 것처럼 신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피 속에 노폐물이 쌓입니다.

이 상태가 심해지면 피로, 부종, 호흡곤란, 의식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심각한 신장 기능 저하가 발생하면 의사도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투석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투석의 기본 원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코틀랜드 화학자 토머스 그레이엄(Thomas Graham)은 반투과성 막을 사이에 두고 물질이 이동하는 현상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이 현상을 'dialysis', 즉 투석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투과성 막입니다.

아주 작은 물질은 통과시키지만 큰 물질은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필터입니다.

이 원리가 훗날 혈액 속 노폐물은 빼내고 혈액세포는 그대로 남겨두는 인공신장의 핵심이 됩니다.

1924년, 사람에게 처음 혈액투석을 시도하다

사람에게 실제 혈액투석을 처음 시도한 인물은 독일 의사 게오르크 하스(Georg Haas)였습니다.

1924년 하스는 신장 기능이 크게 떨어진 환자에게 혈액투석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장치는 아직 미숙했고 반복해서 안전하게 치료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장기적으로 구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용하는 실용적인 인공신장의 탄생은 조금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943년, 세계 최초 실용적인 투석기의 탄생

현대 혈액투석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은 네덜란드 의사 빌럼 요한 콜프(Willem Johan Kolff)입니다.

콜프는 신장이 망가져 죽어가는 젊은 환자들을 보면서 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직접 인공신장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1943년 콜프와 엔지니어 헨드릭 베르크는 회전식 드럼 인공신장(Rotating Drum Kidney)을 개발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거대하고 투박한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환자의 피를 몸 밖으로 꺼내 노폐물을 제거한 뒤 다시 몸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장치는 최초의 실용적인 인공신장으로 평가됩니다.

세탁기와 자동차 부품으로 만든 인공신장

콜프가 투석기를 만들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독일의 점령 아래 있었고 의료 장비를 만들 부품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콜프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을 활용했습니다.

혈액이 흐르는 막으로는 당시 식품 포장 등에 쓰이던 셀로판을 사용했습니다.

드럼을 움직이는 데는 모터를 사용했고 물을 순환시키기 위해 자동차용 펌프 같은 부품까지 활용했습니다.

일부 역사 기록에는 비행기 알루미늄이나 생활용품 제작 기술까지 동원됐다고 전해집니다.

완벽한 의료기기를 주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직접 조립해 만든 셈입니다.

회전식 인공신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기계 중심에는 커다란 원통 모양의 드럼이 있었습니다.

그 드럼 주변에 셀로판 관을 길게 감았습니다.

환자의 피는 이 셀로판 관 안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드럼 아래에는 노폐물을 받아낼 투석액이 담겨 있었습니다.

드럼이 천천히 회전하면 혈액이 들어 있는 셀로판 관이 투석액 속을 지나갑니다.

이때 혈액 속의 작은 노폐물이 셀로판 막을 지나 투석액 쪽으로 이동합니다.

혈액세포처럼 큰 성분은 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환자의 몸으로 돌아갑니다.

16명의 환자를 살리지 못하다

콜프는 투석기를 만들었다고 곧바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43년부터 여러 환자에게 투석을 시도했습니다.

일부 환자는 투석 후 의식을 되찾거나 혈액 속 노폐물 수치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환자의 혈관을 반복해서 안전하게 연결하는 기술도 부족했고 감염이나 출혈 같은 문제도 많았습니다.

결국 초기 환자들은 장기간 생존하지 못했습니다.

연속된 실패에도 콜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장비를 계속 수정하고 치료 방법을 개선했습니다.

1945년, 드디어 환자가 살아나다

그리고 1945년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67세 여성이 급성 신장 손상과 요독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콜프는 자신의 회전식 인공신장을 사용해 긴 시간 동안 혈액투석을 시행했습니다.

투석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환자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환자는 회복한 뒤 수년을 더 살았습니다.

의학사에서는 이 환자를 혈액투석을 통해 장기간 생존한 최초의 환자로 기록합니다.

수많은 실패 끝에 인공신장이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투석기는 어떻게 피를 깨끗하게 할까?

현대 혈액투석기도 기본 원리는 콜프의 인공신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환자의 피가 몸 밖으로 나와 투석기(dialyzer)를 통과합니다.

투석기 안에는 아주 가느다란 막이 수없이 들어 있습니다.

막의 한쪽에는 혈액이 흐르고 반대쪽에는 투석액이 흐릅니다.

혈액 속 노폐물과 과도한 전해질 등이 막을 지나 투석액으로 이동합니다.

또 필요에 따라 몸에 너무 많이 쌓인 수분도 제거합니다.

정화된 혈액은 다시 환자의 몸으로 돌아갑니다.

마치 몸 밖에 잠시 작은 인공 신장을 연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1960년, 반복 투석의 길이 열리다

초기 혈액투석에는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환자가 투석을 받을 때마다 혈관에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반복 치료를 하면 사용할 수 있는 혈관이 부족해졌습니다.

1960년 미국의 벨딩 스크리브너(Belding Scribner)와 웨인 퀸턴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혈관 접근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이를 흔히 스크리브너 션트(Scribner shunt)라고 부릅니다.

덕분에 같은 환자가 반복해서 혈액투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기술은 만성 신부전 환자의 장기 혈액투석 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세계 최초 투석기의 발전 과정

시기 인물 중요한 사건
19세기 토머스 그레이엄 투석 원리 연구
1924년 게오르크 하스 사람 대상 초기 혈액투석 시도
1943년 빌럼 콜프 회전식 드럼 인공신장 개발
1945년 빌럼 콜프 최초 장기 생존 환자 등장
1960년 스크리브너·퀸턴 반복 혈액투석 가능
현대 - 소형·정밀 혈액투석 시스템

현대 투석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콜프의 초기 인공신장은 방 한쪽을 차지할 정도로 크고 복잡했습니다.

현대 투석기는 훨씬 작아졌고 혈액의 흐름과 압력, 수분 제거량 등을 컴퓨터가 정밀하게 관리합니다.

투석 필터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과거의 셀로판 관 대신 수많은 미세한 중공섬유가 들어 있는 투석기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기본 생각은 비슷합니다.

피를 몸 밖으로 꺼낸 뒤 막을 이용해 노폐물을 걸러내고 깨끗해진 피를 다시 돌려보낸다.

8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아이디어가 지금도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느낀 점

투석기의 역사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처음 만들어진 기계가 얼마나 평범한 물건들로 만들어졌는지였습니다.

셀로판과 자동차 부품 같은 재료를 이용해 사람의 신장을 대신하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처음부터 성공한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러 환자를 살리지 못했지만 콜프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945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 번의 성공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수많은 실패가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한눈에 정리

- 투석의 기본 원리는 19세기 토머스 그레이엄의 연구에서 시작

- 1924년 게오르크 하스가 사람에게 초기 혈액투석 시도

- 1943년 빌럼 콜프가 실용적인 회전식 드럼 인공신장 개발

- 혈액을 담는 막으로 셀로판을 사용

- 초기 환자들은 장기 생존하지 못했음

- 1945년 최초의 장기 생존 환자 등장

- 1960년 스크리브너 션트 개발로 반복 투석 가능

- 현대 혈액투석도 반투과성 막을 이용해 혈액을 정화하는 기본 원리를 사용

FAQ

Q1. 세계 최초의 투석기는 누가 만들었나요?

현대 혈액투석의 출발점이 된 실용적인 인공신장은 네덜란드 의사 빌럼 콜프가 1943년 개발한 회전식 드럼 인공신장입니다.

Q2. 세계 최초로 혈액투석을 받은 사람은 언제였나요?

사람에게 혈액투석을 처음 시도한 기록은 1924년 독일 의사 게오르크 하스의 치료입니다. 다만 혈액투석을 통해 환자가 장기간 생존한 최초의 성공 사례는 1945년 콜프의 환자였습니다.

Q3. 투석기는 신장을 완전히 대신하나요?

혈액투석은 신장의 중요한 기능인 노폐물과 과도한 수분 제거를 대신하지만 신장이 수행하는 모든 기능을 완전히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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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참고

-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MC - Willem Kolff와 인공신장의 역사
Dr. Willem Kolff: The Father of the Artificial Kidney

-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MC - 투석 기술의 발전
The Current and Future Landscape of Dialysis

- PubMed - 투석의 역사
History of the Science of Di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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